부북스 「인간의 대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 김모세 옮김
우리는 수만 권의 책에서보다 대지에서 우리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운다.
그건 대지가 우리에게 저항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장애물과 맞설 때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대패나 쟁기 같은 연장이 필요하다.
농부는 밭을 갈며 자연의 비밀을 조금씩 캐낸다.
그가 캐낸 진리는 보편적이다.
"폭풍우며 안개, 눈, 이런 것들이 종종 자네를 괴롭힐 걸세.
그럴 때에는 자네보다 먼저 그런 것을 겪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그리고 '남들이 성공한 것은 나도 성공할 수 있다'고 다짐하게."
인생도 그런 것이다.
우리는 우선 돈을 모아 여러 해 동안 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시간이 이 작업을 망치고, 나무를 베어 버리는 때가 온다.
동료들은 하나 둘 그들의 그늘을 우리에게서 거두어 간다.
그러면 우리의 슬픔에는늙어간다는 보이지 않는 회한이 뒤섞이게 된다.
우리가 메르모즈와 또 다른 동료들로부터 배운 교훈이 이러한 것이었다.
소명의 위대함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결합시킨다는 것에 있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의미의 부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관계일 것이다.
그는 기꺼이 자신의 잎으로 드넓은 지평선을 덮기를 승낙하는 위대한 존재들 중 하나이다.
인간이 된다는 것,
그것은 자기와는 관계가 없어보이는 비참함과 직면했을 때부끄러움을 느끼는 일이다.
그것은 또 동료들이 가져온 승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이다.
그것은 세계를 건설하는 데 자기의 돌을 놓음으로써 이바지하고 있다고 느끼는 일이다.
어떤 사람에게 진리는 집을 짓는데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진리는 거기 들어가 사는 데 있다네.
완성이란
이제 더이상 덧붙일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는 뺄 것이 없을 때를 말하는 것이지.
얼핏 보기에
사막이 공허와 침묵뿐인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사막이 하루 동안의 연인들에게는 몸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 고향의 작은 마을도 자기 모습을 감추는 법이다.
만약 우리가 그 마을을 위해 나머지 세계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만약 우리가 그 마을의 전통과 관습, 경쟁 관계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고향을 그곳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 가까이에 있지만, 자신만의 수도원 속에 갇혀
우리는 모르는 규칙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은
티베트에서나 느낄 수 있을 법한 고독 속에서,
어떤 비행기로도 결코 갈 수 없을 것 같이 먼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다.
그의 독방을 무엇 하러 방문한단 말인가!
그 방은 비어있다.
인간의 제국은 인간 내면에 있다.
마찬가지로
사막은 모래로도, 투아레그 족으로도, 혹은
소총으로 무장한 무어 족으로도 이러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게임의 규칙을 받아들였다.
이 게임은 우리를 본래의 모습으로 만들어버린다.
사하라는 우리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사하라에 간다는 것은,
오아시스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샘을 우리의 종교로 만드는 것이다.
당신에게 사하라는 무엇이었나, 중사?
그것은 당신을 향해 끊임없이 걸어오는 신이었다.
그것은 또한 사막에서 5,0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아름다운 금발의 사촌 누이가 지닌 다정함이기도 했다.
그럼 우리에게 사막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안에 태어나는 그 무엇이다.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가 배우는 그 무엇이다.
우리도 그날 밤 사촌 누이와 대위에 반했다
....
진리,
그것은 결코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이 땅에서,
다른 땅이 아닌 이 땅에서만 오렌지 나무가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열매를 맺는다면,
바로 이 땅이 오렌지 나무의 진리인 것이다.
어떤 종교, 문화, 가치 척도, 행동 양식이 인간의 마음을 충만하게 하면,
그리고 인간 안에서 자신도 알지 못하고 있던 위대한 주인을 해방시켜 준다면,
그것들이 인간의 진리가 된다.
논리?
논리는 나름대로 인생을 다르게 설명하게 내버려 두자.
외부에 있는 하나의 공동 목표를 통해 형제로 맺어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숨을 쉴 수 있다.
경험을 통해 보면,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당신들이 전쟁을 거부하지 않는 사람에게
전쟁의 공포를 이해시키려 한다 하자.
그렇다면 그들을 야만인 취급해서는 안 된다.
그를 판단하기 전에,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인간에게 있어 진리란,
그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을 증오하는 당신들 역시 옳다.
인간과 인간의 욕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지닌 본질적인 것으로부터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인간이 가진 진리를
다른 인간의 진리와 서로 대립시켜서는 안 된다.
그렇다.
당신이 옳다.
당신들 모두가 옳다.
.....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진리란
세계를 단순하게 하는 것이지 혼란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진리,
그것은 보편적인 것을 확인해 주는 언어이다.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맡은 역할을 자각할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그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평화롭게 살 수 있고,
또한 평화롭게 죽을 수 있다.
생명에 의미를 주는 것은
죽음에도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평화로운 얼굴, 입술을 다문 채 돌처럼 단단하게 굳은 시골 노파의 얼굴이었다.
나는 이 얼굴에서 아들들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그 얼굴은 아들들의 얼굴을 찍어낸 틀이었다.
그 육체는 그들의 육체, 훌륭한 인간의 표본을 찍어 낸 틀이었다.
그런데 지금 어머니는 기력을 다해서 씨를 꺼낸 꼬투리처럼 쉬고 있다.
아들딸들도 그들의 차례가 되면 자식들을 찍어 내는 틀이 될 것이다.
농가에서는 사람이 죽지 않는다.
어머니는 죽었지만 영원히 살 것이다.
백발의 아름다운 잔해들을 길 위에 하나씩 버리며
자신의 변신을 통해
알지 못하는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이런 혈통의 모습은
정말이지 슬프지만 무척 순박하다.
첫 우편 비행의 날
새벽에 우리를 수행해 주었던 나이 많은 관료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감사하게도 조종사로 지명되어
진정한 인간으로의 변화를 준비하던 그 당시가.
어찌 보면 그들도 우리와 닮은 사람들이었다.
다만 그들은 스스로 굶주려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뿐이었다.
그냥 그렇게
자기 인생을 잠들게 내버려 두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오직 '생기'만이,
그 생기가 진흙 속에 불어넣어질 때
비로소 '인간'이 창조되는 것이다.
* 여러 번역가 버전의 <인간의 대지>를 읽었지만,
나에게는 이 책의 버전이 가장 글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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