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일지] 외부의 소란에 동요하지 않는 내면

[100일 명상] 1일차
명상을 시작했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소란에도 동요하지 않는 고요한 내면을 갖고 싶었다.
살면서 내게 힘든 마음의 상태가 일었났던 때를 돌아보면
대체로 타인에 의한 것이 많았던 것 같다.
나의 내면은 타인의 행동과 감정에 의해 쉽게 흔들렸고,
내 인생을 위한 중요한 결정을 할 때조차 너무 많은 타인의 상황과 감정을 고려했다.
예술가의 삶을 살기로 결정했을 때,
내가 태생적으로 공감지수과 민감지수가 높은 인간이라는 사실은 큰 행운이었다.
마치 리트머스 종이처럼 어떤 상황들은 즉각적으로 나에게 감지되었으며,
타인이 느끼는 감정적 인지보다 내게 더 복잡하고 풍성한 메시지로 다가왔기에
나는 그 모든 상황들에서 타인보다 더 풍부한 표현력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으로 그 복잡하고 풍성한 감정들은 나의 일상을 너무 버겁게 만들었다.
나와 일말의 관련이 없는 뉴스를 볼 때조차도
나는 그 감정에 휩싸여 고통스럽거나 슬픔에 빠져버리는 심각한 동기화가 문제였다.
예민한 촉들, 감정의 터치들을 느끼고 싶지만 느끼고 싶지 않은 이중적 감정.
부드럽고 연한 살결로 외부의 모든 것을 느끼고 싶지만,
단단한 껍질로 마음 평온은 유지하고 싶었다.
이 내면과 외면이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어쩌면 이 두 가지가 전혀 다른 존재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외부의 사람들과 나 자신이 전혀 다른 존재인 것처럼
분리될 수 있다면...?
그들을 나로, 나를 그들로 보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그래서 명상을 시작했다.명상을 통해 나 자신의 내면을 탐색해본다면
나 자신에 대해서 좀더 의식하게 되고,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타인의 감정에 민감한 천성에서 나 자신을 더 소모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리를 통해 지식으로 아는 것과
훈련을 통해 몸으로 아는 것은 다르니,
직접적인 명상훈련법을 배우고 자신을 다스려보기로 했다.
명상을 접하고 가장 고민스러웠던 것은 뜻밖에도 졸음이었다.
맑은 정신으로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 명상을 하려고 눈을 감으면
호흡을 따르던 것도 잠시,
곧 졸음이 몰려와 집중과 의식은 수면과 무의식의 세계로 흘러가버린다.
나에게는 새벽무렵에 잠이 드는 습관이 있었고,
평일에는 대체로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명상을 하기 위한 컨디션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주말을 이용해 충분한 수면을 한 뒤 일어나자마자 명상을 시도해보았다.
좀더 맑은 머릿속에서 호흡을 감지할 수 있었고, 집중의 시간도 더 길었다.
수면에 대한 문제도 차츰 풀어야 할 숙제이리라.